Notice (공지사항)

‘재미 독립유공자 현황과 후손 찾기’ (상)- 주동완 코리안리서치센터 원장

서훈 받은 독립유공자 총 14,879명중 37.7% 미전수
미전수 5,616명중 23.6% 해외서 독립운동
산술평균 결과 1886년에 출생 1952년에 사망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낯선 미국땅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싸웠던 미국내 독립유공자들의 현황을 알리고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어도 서훈이 본인이나 가족에게 전달되지 않은 미국내 미전수자들의 후손찾기 차원에서 미주 한인 이민 사회와 역사를 연구하고 기록들을 발굴하는 코리안리서치센터 주동완 원장의 ‘재미 독립유공자 현황과 후손찾기’ 주제의 글을 상·하로 나눠 연재한다.


■제국은 멸망했어도 백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경술년(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의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 사이에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이 조인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인 8월 29일 구슬비가 내리는 월요일 아침 조간신문에 전문과 8개의 조항으로 이루어진 조약문이 발표되고 이어서 일본의 메이지 천황의 조서와 순종황제의 조칙이 실렸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대한제국은 그렇게 멸망했다.


몽양 여운형의 동생 여운홍은 그가 중학교 3학년의 나이에 겪었던 경술국치일의 기억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 바 있다.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구슬피 내리는 가을비는 우리들의 눈물처럼 삼천리 강산을 적셨다. 조간신문에 합방조칙이 발표되고 거리에는 그 망국의 치욕문이 붙었다. 아침밥도 못 먹고 학생들이 많이 기숙하던 대동기숙사를 찾아갔다. 우리들은 서로 붙들고 종일 통곡했다. 눈이 붓고 목이 쉬도록 울었다.”


그러나 제국은 멸망했어도 백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1910년 경술년 국치일 다음날부터 1945년 을유년 광복절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해내외의 수많은 백성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쟁했다. 우리는 이들을 ‘독립유공자’라 한다. 1960년대 들어 독립유공자들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에 들어서서 한국의 경제력이 향상되기 시작하면서 독립유공자들과 그들의 가족 및 후손들에 대한 예우를 갖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예우를 받아야 할 독립유공자들은 거의 대부분 사망했고 그 간 유공자들의 가족 및 후손에 대한 기록 보존과 정리 또한 미비하여 예우를 해야 할 대상자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특히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한 독립유공자들과 그 후손들의 경우에는, 유공자와 그 후손들을 찾아내기란 더 힘든 상황이 됐다.


■14,879명의 독립유공자 중 38%가 서훈 미전수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포상의 종류는 독립운동에의 기여도와 희생도에 따라 건국훈장(5개 등급), 건국포장, 대통령 표창 등으로 나뉘며, 건국훈장은 다시 대한민국장(1등급), 대통령장(2등급), 독립장(3등급), 애국장(4등급), 애족장(5등급) 등으로 구분된다.


2018년 5월까지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모두 14,879명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아직 서훈이 본인이나 가족들에게 전달되지 않은 미전수자는 전체 독립유공자의 37.7%에 해당하는 5,616명에 이르고 있다. 서훈이 아직까지 미전수된 5,616명 가운데 다시 약 23.6%인 1,324명은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한 해외 독립유공자들이다. 또 미전수된 해외독립유공자 1,324명 중에서 8.2%에 해당하는 109명은 미국에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래 표는 이러한 서훈이 미전수된 독립유공자와 이 가운데 해외 미전수자 그리고 특히 미국의 미전수자 현황을 나타내고 있다.


■미전수된 미국의 독립유공자들의 평균연령
서훈이 미전수된 미국의 독립유공자들 가운데 출생연대가 알려진 96명만으로 대략 산술 평균을 내보면 미국내 미전수 독립유공자들의 평균 출생연도는 1886.3년이다. 한국이 일본에 식민지가 된 1910년을 기준으로 볼 때, 미국내 미전수 독립유공자들이 한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을 시작했을 때 평균나이는 대략 24세 정도로 보여진다.


또 미국내 미전수 독립유공자들의 평균 사망연도는 1952.8년이다. 그리고 출생연도와 사망연도가 정확한 미국내 미전수 독립유공자들의 생존연수로 미국내 독립유공자들의 펑균 나이를 계산해보면 대략, 71.2세이다.


따라서 산술적으로 평균해 계산한 것을 종합해보면, 미국내 미전수 독립유공자들은 평균적으로 대략 1886년에 출생, 24세가 되던 1910년부터 한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많은 분들이 1945년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생전에 보셨고 평균 사망연도인 1952년에서 평균생존연수인 71세가 되던 1957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가장 평균적으로 사망한 연도는 1955년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독립유공자들에 대해 1962년부터 서훈이 되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그 당시에는 담당 부처도 정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독립유공자 관련 법령이 정비되고 본격적으로 서훈되기 시작한 1996년 이후부터라고 한다면 거의 한 세대이상인 41년 간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미국 내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관심이 부재한 속에서 4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이들에 대한 기록이 멸실되거나 기억들이 지워져버린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무관심과 방치가 미국내 미전수 독립유공자가 109명으로 나타난 것이며,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미국 내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내 미전수 독립유공자들이 대부분 남성인 것을 보면, 특히 여성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던 미국 내 한국인들의 독립활동을 생각해볼 때 미국 내 한인 여성들의 독립활동은 거의 배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캘리포니아 61.4%·하와이 20.2% $뉴욕 4.6%
■미주 독립유공자 활동지역
한인 이민자 이주경로와 일치


미국, 멕시코, 쿠바 등 미주지역에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한 독립유공자는 총 257명으로 나타나있다.


이들 257명 가운데 아직 서훈이 후손들에게 전달되지 않은 경우는 약 63%에 해당하는 161건이다. 그리고 이 161건 가운데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해 독립유공자로 서훈됐지만 후손을 찾지 못해 미전수된 경우는 약 68%인 총 109건으로 조사됐다.


미국내 미전수 독립유공자들이 활동했던 미국내 주와 시로 분류해보면, 뉴욕, LA, 샌프란시스코, 새크라멘토 및 기타지역 등이며 이중 캘리포니아주가 61.4%, 하와이가 20.2%, 시카고를 중심으로 한 일리노이주가 7.3% 그리고 뉴욕이 4.6%로 나타나 미주 한인들의 미국내 한인 이민자들의 이주 경로와 일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동완 코리안리서치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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