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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70주년, 감동적인 글입니다. [황 근 LA흥사단 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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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가 많으신 권사님이 보내주신 글인데 6.25 70주년을 맞아서 최근에 읽은 글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글입니다.
[황 근 LA흥사단 단우]
 
" ‘김 소위’ 옆으로 간 ‘황 장군’
<전교인 정오 기도회-64> 2020. 6. 25.
* 찬송가 429장(통 48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 52:7)
지난 6월 23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는 고 황규만 장군(준장)의 영결식이 열렸습니다. 6월 21일 세상을 떠난 고 황규만 장군이 영면에 들어간 곳은 현충원의 장군 묘역이 아닌 장병 묘역이었습니다. 황 장군은 “육군소위 김 의 묘” 옆자리에 묻혔습니다.
장군 출신이 장병 묘역에 묻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현충원에 있는 8만여 묘 중에서 유일하게 이름 없는 육군 소위의 묘 옆에 안장된다는 이 이상한 이야기의 시작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때는 고 황규만 장군이 육군사관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황규만 장군은 소위로 임관하여 1950년 8월 27일 수도사단 6연대 소속으로 경북 안강지구 도음산 384고지에서 북한군과 맞서고 있었습니다. 그때 1연대 소속으로 황 소위의 부대를 도우러 왔다는 김 소위와 부대원들을 만나게 됩니다.
갑종 1기 출신으로 소위로 임관했다는 ‘김 소위’는 적진을 정찰하겠다며 포복으로 접근하다가 적의 기관총 사격에 전사했습니다. 황 소위는 목숨을 걸고 김 소위의 시신을 끌고 내려와 시신을 임시로 땅에 묻고는 큰 돌 하나를 굴려 표시를 해 둔 채 급히 작전 지역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황 소위가 김 소위의 유해를 발굴한 것은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대령으로 진급한 황 소위는 각고의 노력 끝에 김 소위의 유해를 발굴해 국립묘지에 안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조차 몰랐기에 나중에 이름을 찾으면 넣기 위해서 이름 두 자가 들어갈 공간은 남겨두고 “육군소위 김 의 묘”라고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황 소위는 장군(준장)으로 진급했고, 우연한 기회에 갑종 1기 출신을 만나 김 소위의 이름이 ‘수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6년 만이었습니다. 또 김 소위의 가족도 찾았습니다.
전쟁 중에 잠깐 스친 인연이었지만, 눈앞에서 전사한 전우를 잊지 못한 황 장군은 1년에 몇 번씩 김 소위의 묘를 찾았고, 자신이 죽으면 김 소위 옆에 묻히게 해달라는 유언대로 지난 23일 김 소위 곁에서 영면에 들어갔습니다.
나중에 이름을 찾았지만,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의 뜻에 따라 김 소위의 묘비에는 여전히 “육군 소위 김 의 묘”라고만 쓰여 있습니다. 이름 없는 묘비는 당시의 비극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전사한 전우를 잊지 못해 장병 묘역에 묻힌 황 장군의 이야기는 비극 속에서도 우정을 지킨 아름다운 감동이 되어 긴 여운으로 남습니다.
몇 년 전 하와이에서 사역할 때, 펀치볼 국립묘지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묘지에는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묘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무명 용사의 묘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회에서 국화꽃 200송이를 마련해서 펀치볼 국립묘지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국화꽃 200송이로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무명 용사의 묘를 5분의 1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하와이 펀치볼 국립묘지에 안치된 한국전쟁 무명 용사의 묘만 2,000기가 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신원 확인 절차를 거쳐 많은 전사자의 이름을 찾았고, 800기 정도가 무명 용사의 묘로 남아 있습니다. 이듬해에는 태극기와 성조기 1,000개를 가지고 가서 모든 무명 용사의 묘에 하나씩 꽂아 드리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추모 공원’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국민을 지키라는 나라의 부름에 응했던 이 나라의 아들딸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오늘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아직도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휴전 중이라는 사실이 우리 마음 한구석을 여전히 찌르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억합니다.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오늘과 같이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룬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생명으로 세워진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자유와 평화의 나라가 되도록, 한반도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의 소식이 공포되고, 하루속히 평화통일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 기도
모든 만물을 질서와 평화의 원칙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
우리의 욕심과 교만이 평화를 깨트리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지켜 주시옵소서.
사람들의 탐욕이 세상의 질서와 평화를 깨트리지 않게 하시고, 모든 이들에게 평화로운 세상을 허락하옵소서.
우리의 자녀들에게 평화로운 세상을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게 하옵소서.
한국전쟁을 겪은 이들의 마음속에 남은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시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친 수많은 이들을 기억하며 감사하게 하옵소서.
전쟁의 상흔을 딛고 일어선 대한민국을 지켜 주시고, 한반도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평화 통일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 속에도 주님이 주시는 참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라며,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오늘의 기도 제목 :
- 한반도의 평화로운 통일이 속히 이루어지도록
- 자유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친 이들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 지금도 자유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애쓰는 모든 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어려움 당하는 이들을 위해
* 주기도문으로 기도회를 마칩니다."
1 Comments
admin 2020.06.26 09:34  
11사단에서 소총소대장으로 근무할 때 큰 훈련을 나가면 포병관측 장교들이 포격 지원을 위해 중대에 배속되어 옵니다.
보통 소위 한 명이 통신병 한 명과 옵니다. 주로 중대장하고 있어서 얘기할 시간이 거의 나지 않는데 학사동기가 가끔 오면은 무지 반가웠어요.
위의 글에서 도우러 왔다는 김소위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
[황 근 LA흥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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