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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사, 백범과 사돈 도산과는 두차례 인연

안중근 의사와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선생은 비슷한 시대를 산 위인들이라 얽힌 인연도 적지 않다. 안 의사는 1879년생, 백범은 1876년생, 도산은 1878년생이다.

안 의사는 백범과 사돈지간이다. 안 의사의 동생 안정근(1885~1949년)도 형이 순국한 후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서 백범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 안정근의 2남4녀 중 차녀 안미생이 김구 주석의 비서로 활동했고, 김구의 맏아들 김인과 결혼했다. 이 결혼으로 백범 김구와 안중근 집안은 사돈이 된 것이다.

안 의사와 백범의 인연은 이것만이 아니다. 김구가 동학농민전쟁에 뛰어들었다가 1895년 해주성 공격에 실패하고 몸을 피한 곳이 황해도 신천의 안태훈 진사 집이다. 안 진사가 바로 안 의사의 부친이다. 이때 김구는 세 살 아래인 소년 안중근을 만난다. 이런 인연으로 1909년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때, 일제는 김구를 체포해 연루 여부를 조사했으나 무관한 것이 밝혀지자 풀어주기도 했다.
 

백범은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빠져나왔을 때,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하자 안 의사의 다른 동생 안공근을 상하이로 밀파해 형수(안 의사의 부인) 가족을 모셔오도록 지시한 인연도 있다.

안 의사는 1907년 북간도·연해주로 망명하기 직전에 안창호와 교류를 갖는다. 한 살 차이인 두 사람은 함께 나라를 걱정한 동지 관계였다고 김호일 안중근기념관장은 말했다.

서북지방을 돌며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던 안창호가 1907년 진남포에서 강연했을 때 안 의사는 진남포에서 돈의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강연 후 따로 만나 망해가는 나라를 살릴 방법을 논의했다.

두 사람은 한 번 더 만난다. 1907년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자, 대한제국 군대는 최후로 일본군과 시가전을 벌인다. 이때 안 의사는 위급한 시국 상황을 듣고 급히 상경해 있었다. 안 의사는 시가전이 끝나자 도산 안창호 등과 함께 부상자를 구해 병원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본지에 연재 중인 이문열의 소설 '불멸'은 요즘 이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 만남 직후 안 의사는 북간도·연해주로 망명했고, 안 의사가 1910년 순국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인연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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