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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유산 3.1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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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유산 3.1정신  

 

한민족의 일원이라면 대일본 3.1항쟁을 모르는 없을 것이다. 잔학한 일제 무단통치에 저항하여 폭발된 거족적 대규모 항일애국독립운동이자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기도 했다. 박은식의 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시위참가자 200여만명, 사망자 7,509, 부상자 15,850, 구속된자가 45,306, 불타거나 파괴된 민가 715, 교회 47개소 학교 2개소  , 왜적의 총칼 앞에 생명을 돌보지 않는 우리 민족사의 가장 처참한   민중항쟁이었다. 경향각처, 남녀노소 계층과 신분을 망라한 맨주먹의 평화적 시위이었다. 3.1 100주년을 맞는 2019, 3.1절이 더욱 새롭게 조명되면서 의미를 혁명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여론이 더욱 확대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오래 전부터 이러한 관점을 갖게된 필자로서는 자못 감개무량하지 않을 없다.

 

불편한 한일 관계와 제국주의

 

돌이켜 보건데 한일간의 역사는 대체로 견디기 불편한 관계의 연속이었다. 지리적으로 섬나라인 일본의 지정학적 여건은 그들로 하여금 고립상태를 완화하고 극복하기 위한 대륙진출을 추동했고 이를 위한 한반도에의 접근과 경유의 필요성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욕구를 충족코자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 같은 침략전쟁을 도발하고 우리 국토를 유린한 것은 용인할 수 없는 만행이다. 설상가상으로 19세기 후반기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의 서세동점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앞서서 서구 유렵으로부터 선진 근대산업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일본은 국력을 신장하고 국방력의 증강을 통해 서구열강과 세를 겨룰 수 있는 제국주의 국가로 급성장하였다. 우선 조선을 침탈하고 여세를 몰아 중국, 동남아로 세를 확장해 나갔다. 문제는 그들의 침략의 관문이 바로 한반도였고 첫 희생양이 한민족이요 그 희생의 강도 또한 가장 강했다는 점이다.

 

당시 제국주의 침략을 한층더 가열시킨 것은 18세기 하반기부터 태동한 자본주의이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산업자본주의를 본격화한 서구제국은 확장된 산업의 시장확보를 위해 전 세계적으로 식민지를 확대하는데 매우 경쟁적이고도 침략적이었다. 메이지 유신을 성공적으로 이룩한 일본의 조선에 대한 침략과 식민통치도 자본주의가 접목되어 관민합동으로 이뤄졌기에 그 침탈방식이 한층더 조직적이고 물리적이었다. 자본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를 우리 선조들은 일본의 극한적 수탈통치를 통해 수동적으로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일찍이 경험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근대화는 자생적이 아니라 철저히 일제 침략을 위한 식민지 근대화이었다. 결국 일제의 철저한 수탈식 자본주의의 강요는 우리 민족의 공분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군주제 타파와 공화주의 

 

해방 직 후 미군정과 동아일보가 각각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사회주의에 대한 선호도가 70% 정도이었고 자본주의에 대한 선호도 15%, 공산주의에 대한 선호도는 13%  정도에 그쳤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정으로 이어지는 해방 후 역사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기는 커녕 세계냉전의 틈바구니에서 민족상잔과 분단을 감수해야 했으며 일제가 저질러 놓은 질곡의 역사를 아직도 단절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단언컨데 우리의 험난한 근현대사는 허구적 동양평화론을 앞세운 이웃 일본의 야욕과 침략이 빚어낸 결과물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들은 사과는 커녕 인정도 않고 오히려 합리화하려는 파렴치함을 보이고 있으니 인접국치고는 매우 불량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조선 말 및 이어지는 대한제국의 구태의연한 내치 및 안이한 국방정책은 일본제국의 침략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외세의 침략에 대비한 정규군 조직조차 없었으며 인류세계의 과학문명의 조류에 무지하고 선진 문물을 수용하는데 태만했다. 더구나 이미 서구제국에 불기시작한 정치적 공화주의 사상은 조선의 군주제를 크게 위협했다. 비록 실패했지만 고종의 폐위음모가 시도되기도 했고 개화파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공화주의 수용태세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공화주의가 완전히 보편화된 시기에는 별 것 아닌것 같아 보이겠지만 반만년 지속되던 군주제를 타파하고 백성이 주인인 공화주의를 수용하는 것은 당시에는 가히 혁명적 발상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을사늑약 후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1907년 도산 안창호의 주도하에 비밀리에 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정치적 결사체인 신민회는 개화자강파에 속하는 지도자들을 거의 망라했으며 그 정치적 노선을 공화주의로 표방하기에 이르렀다.

 

3.1혁명인가?

 

따라서 3.1운동을 통해 나타난 민중의 공화주의에 대한 바램 또한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일제의 반민주적이고 반인간적인 극한적 수탈식 식민통치는 전방위적으로 우리 민족을 압박하였기에 우리의 항쟁 또한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또한 우리 자신의 누적된 적폐도 청산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기에 항쟁의 진행과정과 표출된 염원은 그만큼 더 중첩적이었을 것이다. 국민의정부 시절 독립기념관 관장을 역임한 김삼웅 선생님은 한 기고문을 통해 3.1운동을 3.1혁명으로 평가해야할 이유를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열거했다.

 

. 국치 9년 만에 소수 친일파를 제외한 전 민족이 하나되어 자주독립을 선언하였다.

. 군주제를 폐지하고 근대적인 민주공화제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 여성이 사상 처음으로 근대역사 현장에 등장하였다.

. 신분 해방의 측면이다. 조선의 ‘천민계급’에 속하던 기생, 백정, 광대 등 하층인들까지
  조국해방투쟁 전선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군왕과 양반 중심의 계급사회가 민중이
  중심이 되는 평등주의 사회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 비폭력투쟁으로 세계혁명사의 초유의 일이며, 지난 촛불 시민혁명의 모형이 되었다.

. 세계 피압박민족 해방투쟁의 봉화 역할을 하였다. 중국의 5·4운동을 비롯해 인도와
  이집트, 중동과 아프리카 제국의 반식민지 해방투쟁에 큰 영향을 주었다.

. 국치 이래 독립운동 일각에서 진행되어온 존왕주의 복벽운동을 중단시키고,
  주권불멸론-국민주권승계론에 따른 국민국가 시대를 열었다.

.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에 나가 살던 동포들과 망명자들까지 하나로 묶어내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이루었다.

. 독립의 당위성과 함께 일제의 패권주의와 침략성을 지적하고, 인류가 지향해야 할

  국제평화, 평화공존, 인도주의 등 이상을 제시하면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등장하였다.

이와 같이 3.1운동은 비록 일제에 대한 항쟁이었지만 매우 다양한 대전환기적 의식에 기반한 항쟁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역사에서 가장 괄목할만 대사건으로 역사적 교훈과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3.1독립운동은 분단 이전에 이뤄졌기에 남북한 간의 민족적 공감대의 출발점이 되기에 특별히 불편함이 없는 역사적 사변이며 향후의 통일운동의 정신적 공통분모의 역할을 하기에도 적합한 민족혁명이었다. 현행의 한반도 평화무드와  더불어 궁극적으로 이뤄내야할 평화통일을 위한 보편적 가치와 동기를 부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3.1혁명정신 - 민주주의  

 

우리 역사에서 의미있는 대표적 민중혁명으로 흔히 동학혁명을 시발점으로 3.1혁명, 4.19혁명, 5.18광주항쟁, 6.10항쟁 및 가장 최근의 촛불시민혁명을 들 수 있다. 이 혁명적 항쟁들을 통해 연면히 흐르는 가장 대표적 보편적 가치는 바로 민주주의이다. 현재 남북한이 취하고 있는 체제가 과연 진정한 민주주인가를 반추해볼 때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북미관계의 정상화와 더불어 북한도 체제의 변화를 꾀하리라는 뉴스가 전해지고 있다. 남한에서도 더욱 철저한 민주주의를 지향한 체제변화가 촛불시민혁명의 민심이자 뜻있는 지도자들의 주장이다. 심지어는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에서도 진보적 정치인 내지 민주당 대통령 예비후보들이 자국을 민주적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대담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세계적으로 시야를 확대해볼 때 공산사회주의는 거의 소멸되었고 자본주의는 변혁을 거듭해 오고 있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급증과 더불어 과학의 대발전으로 인간생활의 패턴 또한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이러한 시대적 대전환기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할 지향점은 어디인가? 바로 이 싯점에서 우리는 또 다른 혁명적 변화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 지난 촛불시민혁명의 구호에서 우리가 바라는 소망들이 엿보였다. 간단히 말해서 이를 함축하는 보편적 가치는 미래지향적 사회민주주의라는 게 필자의 견해이다. 즉 인공지능( AI )이 보편화되는 미래사회에 걸맞는 민주주의가 우리가 가야할 지향점이다. 이러한 대전환기는 필연적 현상이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이에 도달하는 것이 지난 혁명들의 과정에서 축적된 이상과 가치를 구현하고 오늘의  시대적 과업을 완수하는 길이다. 지난 대립과 갈등의 역사를 21세기형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기준으로 대정돈하고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이는 통일 한반도를 위한 반석이 될 것이다.

 

새시대의 정신과 한민족의 위상  

 

우리 상고대사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우리의 찬란했던 상고대사를 설파하고 희구한다. 현행의 한반도의 평화무드와 더불어 그 찬란했던 우리네 상고대사에 대한 상상만도 가슴뭉클한 일이다. 통일된 코리아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우리의 정신문화 또한 새롭게 탄생할 수 있으며 인류사회를 향해 새로운 보편적 가치관을 제시하고 인류문명을 새로운 방향으로 계도할 수 있는 정신적 지도국,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어야 한다. 일찍이 도산 안창호는 국민 각자의 건전 인격의 힘에 기반한 국격과 국력을 중시했고 김구는 문화의 힘을 강조했다.   

 

새 시대를 여는 인류문화를 우리 한민족이 창안하여 인류사회 앞에 제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 우리의 상고대사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5천년 역사에 연면히 전해지는 홍익인간의 고귀한 철학은 민주주의 정신을 가장 포괄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심오한 단어이다. 우리의 정신적 저력이 인류의 미래 문명사회에 걸맞는 새로운 개념의 민주주의를 창안해 낼 때 이는 진정한 최고의 한류가 될 것이다. 이것이 3.1 100주년을 맞는 우리 민족의 21세기를 향한 결의이기를 바란다. 가능한 일이다.    

 

정광채

흥사단 뉴욕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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