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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의 친일 행각과 도산과의 관계에 대한 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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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의 친일 행각과 도산과의 관계에 대한 소견
 

한국의 국내 여론이나 여기에 소개된 박만규 단우, 박화만단우 및 이은숙 단우의 글들을 보았을 때 춘원의 친일이나 도산과의 관계에서 부적절한 면이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에 대한 단 내외의 비판여론도 대세라는 판단에 쉽게 도달하게 됩니다. 물론 아직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려는 단우들이 원로단우들을 중심으로 소수 계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으나 그러한 주장은 역사적 사실에 보다 충실하지 못한 결과일 것이라 추측하고 싶습니다.
 

춘원을 비롯한 적지 않은 수의 선배 단우들께서 친일로 변절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70-80 여년이 흐른 오늘의 싯점에서 우리의 생각을 재정돈할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볼 때 이 문제에 대해 담론 수준의 대화를 전개한다는 것은 우리 단을 위해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사료됩니다. 더구나 국내외적 주변환경 또한 대전환기를 맞고 있으며 우리와 동일한 국가적 사회적 고민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경주되고 있음을 고려해 볼 때 우리의 시도는 최적의 단계에 와있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 기회에 지난 역사를 재정돈하고 문제를 대승적으로 봉합하여 더이상의 논쟁을 중단하고 조직 내 분위기를 일신해야겠습니다.
 

우선 춘원 이광수라는 자연인을 순수한 인간적 입장에서 볼 때 개인적으로는 그를 이해하고 동정하고 싶은 마음이 앞섭니다. 어린 시절 전염병으로 부모를 포함 전 가족을 잃고 완전 고아가 된 불우한 생은 난세와 더불어 그 불운의 강도가 더해졌을 것입니다. 심신의 성장은 지장을 받았을 것이고 정서적 경제적 불안은 가중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가 성인으로서의 그의 생애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을가를 상상해 봅니다. 한마디로 그의 문학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심약한 상태에서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과 사상을 정립하지 못하고 주위의 감언이설에 쉽게 흔들렸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청년시절 친일단체 일진회를 주도한 송진우의 도움으로 일본유학을 갔다는 사실은 묘한 여운을 남깁니다. 오히려 이러한 심리상태가 그의 특유의 소설에 대한 구상에 이롭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전인적인 건전 인격의 형성에의 긍정적 양향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의 문학적 재능은 광범위하게 인정되고 있습니다. 그가 동경에서의 2.8 독립선언서의 작성을 주도했다는 것은 그의 사회적 명성을 높이는데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높은 지명도가 도산의 환심을 샀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개화기라는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 볼 때 도산의 심산 또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중요한 요소들이 어우려저 도산이 춘원을 과대평가했으리라는 개연성마저 듭니다. 춘원의 마음의 저변에 흐르는 확고한 시대관 역사관이 확인되지않고 춘원의 당시의 지명도에 의존하여 춘원에 대한 과신이라는 오판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아직 숙성되지 않은 인간 춘원에 대한 애착과 욕심이 그를 쉽게 흥사단에 입단시키고 짧은 기간동안 가속적으로 그에게 중대한 역할을 맡긴 것으로 이해됩니다. 도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춘원이 상해를 떠나 귀국한 후에도 도산은 그에게 국내 조직의 결성과 운영을 일임하고 그에대한 기대를 접지 않았다는 사실은 춘원에 대한 도산의 미련을 엿보게 합니다.
 

이 논쟁의 원칙을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여 있는 그대로 보자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역사적 진실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인간 춘원 이광수는 미워하지 말고 그가 저지른 친일행위와 도산에 대한 위해만 마땅히 비판하자고 말입니다. 그의 본격적 친일활동은 동우회 사건을 통해 곤욕을 치른 후 본격화되었지만 그의 내심에는 그렇게 될만한 요소들이 잠재되어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점에서는 박만규 교수님의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의 친일행각에 대한 합리화, 정당화는 그의 교묘한 문장력에 의해 전달됩니다. 그가 과거의 불유쾌한 전력에 대해 반성은 커녕 합리화 정당화시키려 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슬프고 안타깝게 합니다.

 

우리에게 남은 중대한 문제는 춘원의 지각없는 활동이 도산의 명예와 업적을 왜곡하고 훼손했다는 사실입니다. 도산의 얼굴에 먹칠을 하였고 도산은 먹칠된 채로 우리뿐만 아니라 국민과 민족에게 장구한 세월동안 비춰져 왔다는 것입니다. 아연실색할만한 현상입니다. 그동안 저의 의아스럽던 몇가지 논점이 풀리는 순간입니다. 이제 정석대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속히 왜곡 내지 훼손된 면을 바로잡고 치유해야 합니다. 총정리하여 조직 내부적으로 바로 잡고 전 단우들을 상대로 교육하며 기자회견을 통해 언론에 집중 홍보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춘원에 올인해온 일부 단우들의 생각과 주장을 완전히 잠재우고 우리 단 내 여론을 통일하여 더 이상의 잡음이 없게 하는 것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단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역지사지로 일제하에서의 선배단우들의 심경을 고찰해볼 필요도 있습니다. 유감스러운 상상이지만 비정상적이었던 현대사를 살아오는 동안의 우리의 서로 다른 삶의 방식 내지 언행, 그간의 현대사에 대해 우리는 다양한 시대관를 갖고 있는데, 우리 현대사를 일제시대로 치환해볼 때 과연 우리는 그 시대에 어떠한 삶을 살고 언행을 했을까를 상상해 봅시다. 앞서도 주장했지만 친일로 변절한 선배단우들을 인간적으로 통째로 매도하는 것을 자제하고 보편적 가치기준에서 친일행위 그 자체만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역사적 교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박화만 단우의 분석에 의하면 춘원이 쓴 도산의 최초의 전기 “도산 안창호”에는 무려 75 가지의 문제점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 책의 가치가 별무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도산에 대한 명예훼손뿐만 아니라 역사를 왜곡했다는 점에서 흥사단의 위상과 존재감을 두고두고 폄하시킬 것이라는 점에서 방치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재출판을 중단하고 보관된 기존의 것도 배포중단 및 파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속히 사실에 입각한 새로운 전기를 집필할 준비를 서두르고 가장 최근에 발간된 김삼웅의 도산 평전 투사와 신사의 적절성을 검토한 후 과도기적으로 이 책의 보급을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2017 년에 발간된 이은숙 단우의 “동맹수련과 참여학습”은 매우 잘 편집된 자체 교육훈련용 책이라 생각됩니다. 대대적으로 단우들을 상대로 배포하고 대공주의 등 진보적 측면에서의 도산 사상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관점도 교정토록 독려해야 합니다.
 

“도산 안창호”의 서문에서 춘원이 고백한대로 이 책에서는 도산의 정치적 신념이나 활동에 대해선 다루지 못해 다음 기회에 다루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또한 박만규 단우의 지적대로 춘원이나 주요한은 일찍 상해를 떠나 도산의 정치적 진보적 신념이나 활동상을 직접 보지 못하여 전기에 이를 구체적으로 서술할만한 입장이 아니었다는 지적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을 비판하든 옹호하든 이를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광수나 주요한이 쓴 전기는 내용적으로 그만큼 커다란 헛점이 많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또한 그들이 도산의 전기를 쓸 때는 이미 친일로 전향한 상태이므로 그러한 심리가 전기의 내용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는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광수의 친일 문제와 그것이 도산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제는 대대적으로 정리를 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려야 합니다. 구태의연한 소모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논쟁에 발목이 잡혀 있는 동안 우리는 이 시대와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후퇴하는 시민단체로 평가되어 왔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정광채
뉴욕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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